한통의 전화
2025년 2월 25일 한참 가게에서 일하고있는데, 갑자기 와이프에게서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서방님 애들에게서 전화왔는데, '아빠가 새벽에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데'라고 전화왔는데 어떻게하면 좋겠어" 라고 하는 와이프에게 무슨이야기를 해줘야 하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에 임하는 와중에도 전혀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온통 와이프에게서 온 전화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머니속에있는 핸드폰을 꺼내서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물어보니까 와이프가 "큰애(딸)한테서 전화 온 이유가 왜 왔겠어"라며 되묻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라고 전화한거겠지"라며 대답하자, "응"이라며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그러면 잠깐 기다려, 나 일 끝나는데로 같이 올라가자"하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당시의 시간은 대략 25일 오전 10시 30분쯤의 시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간단하게 오전 아르바이트로 현장 일하는 사람들에게 점심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한 저는 오후 1시30분 정도의 시간이 되어서 일이 마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있는데, 가게 사장님이신 누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오는것이었습니다.
누나가 하는말이 "xx야 지금 뭐하고 있어?" 그래서 제가 "네, 일거리 마치고 점심 먹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나니까 누나에게서 "그럼 나 안가도 되겠지, 잠깐 여기 일좀 보러왔는데, 돈은 누나가 계좌로 보내줄께"라며, 막 전화를 끈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나, 잠깐 드릴얘기도 있구요, 잠깐만 가게로 오시면 안되요"라고 하자 누나가 "전화로는 안되는 말이야"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전화로는 드릴 얘기는 아닌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누나가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있어. 바로 갈께" 라며 대답하는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다먹고 커피한잔을 뽑아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가게 사장이신 누나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응, 우성아 할 얘기 있으면 해"하며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제가 "누나 저 내일(26일)하고 모레(27일) 2틀 알바 빠져야 될거 같습니다.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누나가 하는말이 "왜" 하시는거에요. 제가 " 누나 제가 재혼이거든요. 제 와이프 전 남편이 새벽에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제가 와이프를 데리고 수원에 올라갔다가와야 할 거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니까 누나가 " 그럼 내일(26일)도 쉬고, 모레(27일)도 쉰다고야" 하시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 일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와이프 혼자 다녀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이기도하고, 또 마음의 상심도 클텐데 제가 옆에서 돌봐줘야지요" 라고 하며 말을 마치고, 집에돌아와 아내와 함께 수원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치고, 수원으로 마티즈Ⅱ를 타고 올라갔습니다.(마티즈Ⅱ 2003년 12월 식으로 작년 여름에 중고로 구입해서 지금 1년 조금 안됐지만 몇군데 안좋은 부분빼고는 잘 나가고 있어요. 한가지 흠이라면 에어컨이 안나온다는게 흠이더라구요.작년 여름 혼쭐났습니다.) 차가 변변치 못해서 속도를 못내니까, 제가 있는곳 목포에서 경기도 수원까지 가는거리를 일반 차량으로 갔으면 빠르면 3시간 반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6 시간의 긴 여정을 운전하며, 아내는 옆에서 큰애와 통화하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와중에 옆에서 쳐다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더라구요. 어찌어찌하여 일마치고 집에서 준비하고 와이프랑 함께 올라간 시간이 오후 2시 반 이였는데, 수원 집에 도착하니까 저녁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일단 차를 집앞에는 다른차들로 가득차있고 옆집 주차장이 비어있어서 잠깐 그곳에 차를 주차를하고 집(빌라2층에 살고있음)에 올라가니까 애들(큰딸(x진), 둘째딸(x진), 셋째딸(x진), 넷째아들(x진), 막내아들(x진) 이렇게 다섯 남매가 집에서 얘기하며, 있더라구요.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애들은 아빠의 죽음을 별 일이 아닌듯 하고 있는것 같더라구요. 제 얘기를 좀 하자면, 저는 군대있을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의 아버지도 주무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군 복무를 하고있을 무렵 1998년 의 봄의 끝자락 거의 여름 초입으로 보시면 될거 같네요...위병소 야간근무를 서고있는데, 갑자기 당직 중대장님 옆에 업무를보는 병사가 달려와서 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빨리 집에 가보라고하는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상근예비역으로 (처음입소해서 훈련기간을 빼고)1년 복무를 윗지방에서 현역 군인처럼 마치고 집 근처에서 나머지 1년 생활을하고 제대하는 병역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집근처 부대에서 야간근무를 서는 상근예비역 이라는 병역생활을 하였습니다.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중대장실에서 그렇게 호출을 받고 저는 막사로 달려가 총을 반납하고, 마구 집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위병소에서 차가 지나는 도로까지 한참을 가야하는데, 걸어서는 15분거리를 5분만에 뛰어서나가 지나가는 차를 보고 마구 손을 흔들어 댔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수도꼭지틀어놓은것처럼 쉴새없이 마구 흐르더라구요. 그당시 저의 나이 23살 그때도 어린나이였으며, 한참 그당시에 다른 여자친구와 함께 동거를 하고 있던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를 보니까 택시이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 택시 아저씨가 너무 고마웠습니다.(군인인 제가 엉엉 울면서 말도 얼버무리면서 목포 남상고 앞에 가주세요,하니까 일단 출발하시더라구요,그래서 제가 기사님 죄송한데 제가 택시비가 없어서 그러는데,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하니까 택시기사님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서 아버지의 돌아가신 얘기를 듣고 힘내라며, 요금을 받지 않는것이었습니다.) 일단 택시를 세우고 차에 올라타서 목포에 제가 동거하는집 앞에 내려달라고하고, 자고 있는 여자친구를 부르며 엉엉우는 제 모습에 부시시 눈비비며 일어나는 여자친구가 무슨일이냐며, 또 왜 왔냐며 물어보는 말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봐야 할거 같다고 했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부모님이 사는곳으로 택시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그 당시 살고있는곳은 목포 남상고 건너 골목에 월세방에서 여자친구와 생활을 했고, 부모님은 따로 두분이서 유달산 밑 제일여고 옆 골목에 스라브집에 살고 계셨습니다. 택시에서 내려서 집을 올려다 보는데(그 당시에는 집에서 상을 많이 치뤘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만 푹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집앞에 보이는 상가집에 걸어져 있던 등이 걸어져 있는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3일을 발인날까지 저는 아버지와의 그리움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걸 믿을수없어 처음 집에 도착했던 순간부터 마지막 발인하고 장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구요.그러데 오늘 본 애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냥 천진 난만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지금 드는데, 그당시에 상황이 상황인지라...찍을 수가 없고, 또 그런생각조차 못 했었네요...마지막에 수원시에 있는
수원시 연화장 장례식장에서 아내를 데려다 주고 온 사진 한장이 전부였던거 같네요.그렇게 처음보는 아내의 아이들 앞에서 저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또 몇차례 둘째딸과 많은 이야기를 카톡으로만 남겼었는데, 몇번 주고 받았을뿐 직접 본 것은 이날 처음이었기에 서먹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일단 아이들과함께 저녁을 먹으러 집앞에 고기집으로가서 함께 밥을 먹고, 늦은 시간이기에 아내는 아이들과 몇마디 말을 나누고 돌아와 함께 모텔에서 하루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아내는 엉엉 울뿐 잠을 제대로 청하지를 못하더라구요, 저는 운전도 오래했고, 모텔에 와서 한잔 마시고 바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시간 새벽 1시 정도 되었던것 같네요~ 다음날이 되어 일찍 일어나서 와이프가 아이들과 통화를 했는데, 찾아와주는사람도 없고 아버지랑 함께 어렵게 살고 있어서, 나라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데 와이프의 전남편은 술을 자주 마셨다고 하더라구요...그래서 그 일로 자다가 새벽에 심장발작이 일어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큰딸이 아내에게 얘기해 주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는지인도 없고 돈도 없어서 3일장이 아닌 2틀로 25일 새벽에 자다가 죽어서 26일 오전에 바로 화장하고, 장례를 마감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장례식에 데려다주고 마지막을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았는데, 그때 저는 차에서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아내가 얘기하기를 아이들이 전부 화장하는 순간에 모두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아내가 지켜보고 아내 전화로 큰딸에게 전화가 와 "엄마가 맥을 못추스리고 있으니 모셔가세요."하더라구요. 그래서 차로 주차장에서 조금 움직이니까 아내가 힘이 빠진 채로 걸어오는모습을 보니까 "참 인생이란 허망한것이구나" 하는생각과 함께 " 새벽에 자다가 저렇게 죽을껄, 왜그리 아웅다웅살았을꼬" 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를 차에 태워서 목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